2016년 7월 13일 수요일

상상력으로부터 시작
세상을 구성하는 수 많은 것들에 대해 내가 이해하고 있는 극소수의 대상들 또한 암묵적으로 공유되는 합의에 관한 막연한 믿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언어와 언어 사이의 유희로부터 거리를 두어

2016년 7월 11일 월요일

짙은 갈색 톤의 가죽 가방을 메고 가벼운 느낌의 흰 색 면티 짧은 청바지를 입음.
아치형으로 휘어지다가 만 스테인리스 봉에 기대어 찬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땀을 식히는 중.
보급형 나이키 신발.
시청 역 방송. 이 역은 열차와 승강장 간의 간격이 넓습니다. 내리실 때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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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5일 화요일

글2

의심의 시발점은 명확하지 않다.
심증 혹은 물증은 의심이 일어난 이 후의 문제이다.
의심이 곧 개인의 판단이라고 한다면, 의심이 시작되는 곳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각적인 이상함이다.
겉으로 드러난 논리는 분명 아무 문제없는데 어느 순간 알 수 없는 기시감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이상함을 발견하는 나를 살펴보자. 그 순간 나를 둘러싼 이상함은 제대로 사용되지 못한다. 즉 세상에 어떤 형태로든 드러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바로 소멸된다. 다음에 나타날 무언가에 대한 징후로서 작용한다. 

모든 것이 확률로 이루어진 이 곳에서 징후는 그에 관한 다음 징후적 사건의 발생 확률을 증가시킨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하게 순차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즉 각각의 징후들은 시간적 연속성 혹은 인과관계에 의해 구성되지 않는다. 

2016년 2월 16일 화요일

글을 쓰고 있다.
언제까지가 될진 모르겠으나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무슨 글로 시작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드넓은 백지는 글짓기를 처음 해보던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백지가 채워지는 것인지 내가 채워나가는 건지
그닥 의미가 없는 이런 생각들은 언제나 글을 쓰기로 마음 먹은 순간 생겨난다.
수 많은 규칙들은 일단 제쳐두고, 무언가를 쓰는 일에 집중하기로 해본다.
들어올 사람 하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여전히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날 것 그대로 글로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다.
글을 쓰기 위해 자판을 두드리는 동안에도 여전히 어떤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늘 있었던 일을 쓸 것인가.
여태까지 고민해왔던 문제들에 대해 쓸 것인가.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에 대해 쓸 것인가.
뭐가 되었던 간에
결국에는 무엇인가 생겨나고 사라지기 마련이다.
어짜피 모든 것을 내 인식의 범주안에 둘 수 없으며,
동시에 내가 지금껏 경험한 것들 조차 기억해내지 못한다고 한다면,
무언가를 구분짓고, 규정하고, 기억하려고 애쓰고, 의미를 두는 일은
애초부터 아무런 의미없는 세상에서 펼쳐지는 변주곡에 불과하다.
때론 느리게 때론 빠르게 흘러가는 이 음악들은
아무런 이유없이 삶 그 자체에서 나오는 거대한 압박을 견디기 위한 수 많은 여과장치 일지도 모른다.
혹은 이미 분리되어 버린 내 몸과
태어나는 순간 결정 되어버릴 언어와 문화 그리고 환경등에 관해서 나름대로의 이유와 타당성을 부여하고 마치 어떤 필연적인 논리적 인과관계에 맞춰서 벌어지는 무대 연극의 주인공이 가져야 할 조건들을 부여하는 것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