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16일 일요일
이누이트
시는 죽었다. 죽지 않았다면 오로지 그 형식만이 껍데기처럼 남아있을 뿐이다. 시 안에 내포되어 있던 생동감은 단단히 굳어 바스라져 내리고, 이제는 더 이상 현존성을 드러내지 못한 채로 신화가 되어 버렸다. 시에서 빠져나온 노래는 감각만을 자극하면서 의미없이 되풀이되며, 끊임없이 반복되는 오늘을 멀찍이서 다독인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보겠다는 포부로 시작한 이들도 모두 사라졌으며, 세상은 찰나의 빛과 무한한 어둠으로 나뉘어졌는데, 그 빛 조차도 인간에게 허용되지 않았다. 수 많은 생명들이 불길한 암운을 감지했으나, 그들 또한 무력하여 어찌하지 못하였다. 반면에 인간은 스스로의 욕심을 채우는데 바빴기에 여전히 감각을 곤두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세계의 멸망을 감지한 몇몇의 사람들이 있었으나 쉬이 그것을 입에 담지 못하였고, 아무도 쉽사리 그것이 올 거라고 믿지 않았다.
그들이 나타난 것은 정확히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인간들은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그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채고 있었다. 그들은 결코 눈에 드러나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존재한다는 느낌은 분명히 주었다. 그 느낌만으로도 많은 이들이 그들의 존재를 알아챌 수 있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행히도 그들은 인간의 편이 아니었다.
그들은 한 순간 번쩍이는 서광과도 같았으며, 계곡에서 울리는 메아리와 같고, 거친 태풍 가운데에서 고요한 눈과 같았다. 볼수도 들을수도 만질수도 없지만 그들을 따르는 이들은 늘어만 갔고, 그 중에는 상당수의 권력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꼈으며, 그들을 믿지않는 자들을 배격하기에 나선다. 이 움직임은 하나의 종교를 넘어서 인간을 크게 두 분류로 나눠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데, 믿는 자들은 자신들 스스로를 '옴니스'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옴니스는 이전까지 지속되어오던 모든 관계들을 하나의 기준으로 재정립하게 만드는데, 그것은 바로 '당신은 옴니스입니까, 아닙니까'였다. 옴니스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존재인 그들의 매개자인 '메디아토르'를 찾아냈으며, 메디아토르는 그들의 이름을 '람파스'라고 전하였다. 옴니스들은 람파스를 위해 각지에 신단을 세우기 시작했는데, 신단은 크게 5층으로 세워졌으며, 금으로 둘러 빛을 발했다. 그리고 옴니스들은 자신들의 구호인 '믿는자에게 광휘를'를 외치며, 람파스에 대한 무한의 경외를 표하였다.
시간이 지날 수록 각 지역에서 메디아토르가 발견되면서 메디아토르들은 하나의 집단을 이루게 되었고, 메디아토르를 사칭하는 인간들이 많아지게 되면서, 그들을 걸러내기 위해 까다로운 테스트가 시행되게 되었다. 그리고 가짜 메디아토르로 밝혀지는 순간, 그들은 람파스를 모독한 죄로 곧바로 사형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람파스로 명명된 '그들'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그들'은 분명 존재하고 있었지만 그들 스스로도 명확한 존재의 목적을 알지 못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적어도 인간들에 대한 호의를 갖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의 의식은 하나이자 전체였으며, 동시에 '그들' 역시도 전체이자 하나였다. 람파스에게 있어 시공간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은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시공간 축을 넘나들 수 있었으며, 시공간을 넘나드는 순간 넘치는 에너지의 폭발을 부드럽게 사라지게 만들 수 있었다. 때문에 인간은 더 넓은 차원에 살고 있는 '그들'의 존재를 어렴풋한 흔적 혹은 느낌으로만 인지할 수 있었으며, 아무도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러나 메디아토르만은 예외였다. 가장 먼저 발견된 메디아토르는 보통 인간과는 다른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어린 소년이었는데, 말로는 할 수 없는 그 세계에 관해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세계속으로 들어가거나 어떤 물리적인 힘을 행사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어느날 소년은 세계속에서 움직이는 람파스를 보게 되었다. 람파스는 말 그대로 빛과 같이 빛나고 있었는데, 소년이 람파스를 느끼는 순간 람파스도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의 입장에서는 람파스가 자신을 바라보는지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이 자신을 향해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 때 람파스는 거대한 폭풍과 함께 사라졌다. 소년은 폭풍앞에서 눈을 감았다 떴는데,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고 있었으며, 람파스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소년은 이를 옴니스들에게 알렸고, 옴니스는 소년을 메디아토르라는 그들만의 상징적 이미지로 만들어버렸다.
한 편 옴니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람파스의 존재를 믿지 않으며 옴니스에게 반대하는 인간들이 존재했다. 옴니스는 그들을 인간이라는 의미에서 '이누이트'로 명명하였다. 이누이트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불리는 것을 탐탁치 않아했으며, 옴니스의 행동들의 비이성적인 면을 비판하고 거부했으나, 거대한 옴니스의 힘 앞에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옴니스가 아닌 이들에게는 더 이상의 사회적 혜택이 없었으며, 왠만해선 일을 얻거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지도 못하였다. 그것이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게 되자 대부분의 이누이트들 역시 옴니스 밑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옴니스들 가운데는 큰 격차가 있었다.
옴니스들은 처음부터 람파스의 존재를 순수하게 믿었던 자신들의 위치를 드높이기 위해 자신들을 철저하게 뒤늦게 들어온 이누이트들과 차별화시켰고, 스스로를 '프링키피움'이라 칭하였다. 그러나 누구까지를 프링키피움으로 할 것인가에 대해 격렬한 논쟁이 이어졌고, 결국 최초의 메디아토르가 람파스의 존재를 명명하기 시작한 순간을 기준으로 삼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과연 그 누가 그 이전부터 람파스를 믿었는가에 관해 밝혀내야 할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옴니스들은 서로 프링키피움이 되고자 자신의 믿음을 토로하기 시작하였고, 문제가 복잡해지자 결국 그 결정권을 메디아토르 회의에 상정하게 되었다. 이 날까지 메디아토르의 수는 약 50명 정도로 초대 메디아토르가 의장이 되어 집단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는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소년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집행은 2대 3대 메디아토르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실상 옴니스 중 거대한 자본과 권력을 가지고 있던 몇몇 사람에 의해 조정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실정을 잘 아는 옴니스들은 프링키피움이 되기위해 그들에게 잘보이려고 노력했으며, 결국 최종 회의를 통해 약 2천여명의 프링키피움이 선발되었다. 물론 이 안에는 메디아토르에 간섭했던 옴니스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결과적으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제 1계급인 메디아토르 그리고 그 아래로 제 2계급인 프링키피움, 제 3계급인 옴니스를 비롯해 마지막으로 제 4계급인 이누이트로 나눠지게 되었다.
또한 옴니스의 수가 계속해서 증가하자 그들 내부에서도 제 1의 옴니스와 제 2, 제3의 옴니스로 스스로를 구분짓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도 역시 위에서 발생했던 일들이 그대로 일어났다. 결국 제 3의 옴니스는 이누이트에서 뒤늦게 들어온 이들 중에서도 돈도 권력도 없는 이들만이 남게 되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힘없이 당하기만 할 것 같았던 그들은 자신들 보다 아래에 위치한 이누이트에 대한 착취를 이전보다 더욱더 강력하게 진행하였다.
프링키피움들은 발생할지도 모를 옴니스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방책으로 약간의 희망을 그들에게 선사했는데, 그것은 바로 옴니스의 신분상승의 기회였다. 그리고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집단의 최고 기구인 메디아토르였다. 프링키피움들은 자신들의 자본과 권력을 이용하여 신분상승의 기회를 잡은 제2,3의 옴니스들을 본격적으로 선전하였다. 그들은 옴니스들에게 있어 선망의 대상 되었으며, 어딜가든 속해있는 계급에 상관없이 환대를 받았다. 그들은 프링키피움 자신들의 위치를 유지하는 주요한 도구였으며, 동시에 더 큰 자본을 가져다 주는 황금알을 낳는 오리였다. 이처럼 신분상승 하는 옴니스들의 노출이 잦아지자 프링키피움은 조금 더 신중하게 옴니스의 신분상승의 기준을 고려하게 되는데, 그 기준은 바로 특출난 능력과 외모 였다. 이미 자본과 권력을 갖고 있던 프링키피움들에게 있어 더 이상 자신들과 필적할 만한 권력자 혹은 자본가의 등장은 원하지 않는 일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능력과 외모를 최우선 기준으로 올려놓게 되었고, 그들의 방침은 아주 효과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또한 이누이트의 존재 자체를 완강히 부인하면서, 그들을 사회 악으로 규정해버린다. 첫째로 절대적인 람파스를 따르지 않으며, 둘째로 프링키피움과 옴니스의 말을 듣지 않고, 셋째로 사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더 나아가 분위기를 흐트려버리는 존재들. 그리고 이누이트에 대한 방침을 방임에서 회유로 더 나아가 제제 및 억압으로 바꾸게 된다. 그런 동시에 영리한 프링키피움들은 이누이트의 존속이 자신들의 체제를 유지하는데 있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이누이트가 사라지게 된다면, 분명 옴니스 간의 내부적 갈등은 더욱 더 심화될 것이며, 더 나아가 자신들의 위치가 위협받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겉으로는 이누이트를 억압하는 태도를 취하였지만 동시에 어느 정도는 이누이트들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도 하였다.
이를테면 이누이트들을 한꺼번에 모아서 관리하는 '이누이트 특별지구'를 만든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누이트 특별지구에는 끝까지 자신들의 신념을 지켜냈던 이누이트들이 살게 되었는데, 그들은 하루에 2끼씩 배식을 받을 수 있었으며, 자신들의 구역안에서는 그나마 활동이 자유로웠다. 처음에는 이와 같은 조건에 대해 의아해 하던 이누이트들이었지만 이내 받아들이고 조금씩 특별지구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번 특별지구 안으로 들어온 이누이트들은 두 번 다시 그 곳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철저하게 옴니스의 감시를 받으며 살아야만 했다. 또한 이누이트에 대해 적개심을 품은 몇몇 옴니스들의 행동들을 감수하면서 살아야 했는데, 그들에 대한 형식상의 법이 존재했지만 대부분은 미미한 형벌만을 받은 채 금방 풀려났다. 그리고 풀려난 이들은 똑같은 일을 반복했다. 특히나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옴니스들이 더욱 더 그랬는데, 그들에게 있어서 이누이트를 적대하는 행위는 그들 사이에서 무언가 영웅적인 면모로 비춰지는 유행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실상을 알게되면서 이누이트들은 더 이상 특별지구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지 않았으며, 상황이 변하자 프링키피움들은 특별지구에 사는 이누이트에 대한 방침을 완화하는 한 편 그 곳에 살지 않는 이누이트들에 대한 제제를 더욱 더 강화했다. 이를테면 특별구역에 살지 않는 이누이트에 대해서는 즉결 심판이 가능하며, 그를 잡아올 경우 후한 포상이 주어진다는 것이었다. 특별지구에 살지않는 이누이트들은 이제 자신의 목숨까지도 위협 받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까지 숨어들어가야만 했다.
정말로 많은 이들이 자의적 혹은 타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옴니스가 되어버린 이 와중에도 끝까지 이누이트로 남아 있던 이들은 몇이나 되었을까. 그리고 그들은 어떠한 이유로 끝까지 이누이트로 남아 있었던 것일까. 이야기는 옴니스의 눈을 피해 깊은 곳으로 숨어들었던 이누이트로부터 시작된다.
2016년 7월 13일 수요일
2016년 7월 11일 월요일
2016년 7월 5일 화요일
글2
의심의 시발점은 명확하지 않다.
심증 혹은 물증은 의심이 일어난 이 후의 문제이다.
의심이 곧 개인의 판단이라고 한다면, 의심이 시작되는 곳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각적인 이상함이다.
겉으로 드러난 논리는 분명 아무 문제없는데 어느 순간 알 수 없는 기시감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이상함을 발견하는 나를 살펴보자. 그 순간 나를 둘러싼 이상함은 제대로 사용되지 못한다. 즉 세상에 어떤 형태로든 드러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바로 소멸된다. 다음에 나타날 무언가에 대한 징후로서 작용한다.
모든 것이 확률로 이루어진 이 곳에서 징후는 그에 관한 다음 징후적 사건의 발생 확률을 증가시킨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하게 순차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즉 각각의 징후들은 시간적 연속성 혹은 인과관계에 의해 구성되지 않는다.
2016년 2월 16일 화요일
글
글을 쓰고 있다.
언제까지가 될진 모르겠으나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무슨 글로 시작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드넓은 백지는 글짓기를 처음 해보던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백지가 채워지는 것인지 내가 채워나가는 건지
그닥 의미가 없는 이런 생각들은 언제나 글을 쓰기로 마음 먹은 순간 생겨난다.
수 많은 규칙들은 일단 제쳐두고, 무언가를 쓰는 일에 집중하기로 해본다.
들어올 사람 하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여전히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날 것 그대로 글로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다.
글을 쓰기 위해 자판을 두드리는 동안에도 여전히 어떤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늘 있었던 일을 쓸 것인가.
여태까지 고민해왔던 문제들에 대해 쓸 것인가.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에 대해 쓸 것인가.
뭐가 되었던 간에
결국에는 무엇인가 생겨나고 사라지기 마련이다.
어짜피 모든 것을 내 인식의 범주안에 둘 수 없으며,
동시에 내가 지금껏 경험한 것들 조차 기억해내지 못한다고 한다면,
무언가를 구분짓고, 규정하고, 기억하려고 애쓰고, 의미를 두는 일은
애초부터 아무런 의미없는 세상에서 펼쳐지는 변주곡에 불과하다.
때론 느리게 때론 빠르게 흘러가는 이 음악들은
아무런 이유없이 삶 그 자체에서 나오는 거대한 압박을 견디기 위한 수 많은 여과장치 일지도 모른다.
혹은 이미 분리되어 버린 내 몸과
태어나는 순간 결정 되어버릴 언어와 문화 그리고 환경등에 관해서 나름대로의 이유와 타당성을 부여하고 마치 어떤 필연적인 논리적 인과관계에 맞춰서 벌어지는 무대 연극의 주인공이 가져야 할 조건들을 부여하는 것일지도
언제까지가 될진 모르겠으나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무슨 글로 시작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드넓은 백지는 글짓기를 처음 해보던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백지가 채워지는 것인지 내가 채워나가는 건지
그닥 의미가 없는 이런 생각들은 언제나 글을 쓰기로 마음 먹은 순간 생겨난다.
수 많은 규칙들은 일단 제쳐두고, 무언가를 쓰는 일에 집중하기로 해본다.
들어올 사람 하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여전히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날 것 그대로 글로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다.
글을 쓰기 위해 자판을 두드리는 동안에도 여전히 어떤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늘 있었던 일을 쓸 것인가.
여태까지 고민해왔던 문제들에 대해 쓸 것인가.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에 대해 쓸 것인가.
뭐가 되었던 간에
결국에는 무엇인가 생겨나고 사라지기 마련이다.
어짜피 모든 것을 내 인식의 범주안에 둘 수 없으며,
동시에 내가 지금껏 경험한 것들 조차 기억해내지 못한다고 한다면,
무언가를 구분짓고, 규정하고, 기억하려고 애쓰고, 의미를 두는 일은
애초부터 아무런 의미없는 세상에서 펼쳐지는 변주곡에 불과하다.
때론 느리게 때론 빠르게 흘러가는 이 음악들은
아무런 이유없이 삶 그 자체에서 나오는 거대한 압박을 견디기 위한 수 많은 여과장치 일지도 모른다.
혹은 이미 분리되어 버린 내 몸과
태어나는 순간 결정 되어버릴 언어와 문화 그리고 환경등에 관해서 나름대로의 이유와 타당성을 부여하고 마치 어떤 필연적인 논리적 인과관계에 맞춰서 벌어지는 무대 연극의 주인공이 가져야 할 조건들을 부여하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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